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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싶은 차는 많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모델 이름 유래 역사

by 수제꽈배기빌빌 2022. 11. 27.

성난 황소의 대명사 슈퍼카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히 아이코닉한 노란색의 황소 로고일 것입니다. 

 

워낙 황소 로고의 이미지가 강렬하고 대부분 차의 이름도 황소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알고 있었기에 람보르기니도 황소 이름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 람보르기니는 창업자 페루치오Last Name이었습니다. 

람보르기니 로고

모든 남자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성난 황소 람보르기니 모델 이름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설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창업자인 페루치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 이유는 이 람보르기니 회사를 세운 유명한 일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부모 아래서 자랐는데 유독 농업보다는 농기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커서 어린 시절 다뤘던 농기계 지식을 활용해 트랙터 사업에 뛰어듭니다.

2차 세계대전 후 황폐화된 유럽에 마셜 플랜(유럽 부흥 계획)이 농업의 자동화를 밀어주다 보니 폭발적인 트랙터 수요 덕분에 엄청난 부자가 됩니다.

 

기계에 관심이 많은 그는 자연스럽게 자동차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트랙터로 번 막대한 부로 여러 차를 구매합니다.

 

그중에서 페라리의 모델 250 GT도 소유했습니다. 이외에도 그는 계속 더 많은 페라리를 보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페라리는 참 좋지만 공도에서 타기에는 너무 시끄럽고 거칠었다고 표현했습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하지만 유난히 잔고장이 많았던 페라리 때문에 화가 나 기계를 다루는 전문가답게 차를 다 분해해보니 저급한 클러치 때문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고장이 날 때마다 차를 수리하기 위해 페라리 본사가 있는 마라넬로에 자주 가야 했습니다.

 

페라리 기술자들은 차를 비밀스럽게 오랜 시간 동안 수리하는데 만족스럽지 못했고 페루치오는 이런 수준 낮은 서비스에 항상 화를 많이 냈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짜증과 불만이 결국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엔초 페라리에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페라리는 승승장구하는 레이스 카였는데 어느 시골 트랙터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가 나타나 차의 결함에 대해 지적하고 짜증을 내니 엔초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페루치오에게 굴욕을 선사합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와 트랙터

엔초는 페루치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람보르기니, 너는 트랙터는 제대로 운전할 수 있을지 몰라도 페라리는 절대로 제대로 다루며 운전할 수 없을 거다" 

엔초 페라리의 이 모욕적인 언사는 최근에는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굴욕을 당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페라리 250 GT를 직접 고쳤는데 이게 오히려 스톡카(일반 승용차를 개조한 레이싱카)보다 성능이 뛰어남을 스스로 증명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본인에게 엄청난 자극이 되어 결국 자신의 이름 람보르기니를 내걸고 1963년 오토모빌 람보르기니 컴퍼니를 설립하게 됩니다.

람보르기니 모델 이름 유래

페루치오는 1916년 4월 28일 태어났습니다. 4월의 별자리는 바로 황소자리 ( Taurus 타우루스 )입니다. 그의 탄생 별자리인 황소와 그는 처음부터 엮일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는 1962년 스페인산 투우 싸움소 사육자로 유명한 돈 에두아르도 미우라의 세비야 목장을 방문합니다. 이곳에서 스페인산 황소 품종 중 하나인 미우라 황소의 거대한 몸집과 맹렬하게 성난 모습에 매료되어 그 순간 성난 황소의 형상을 람보르기니 회사의 엠블렘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이 사건이 람보르기니 차량 모델에 투우와 황소에 관련된 네이밍이 붙게 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미우라

 

1966년 데뷔한 미우라는 위에서 언급한 투우 황소 품종의 이름을 사용한 첫 번째 람보르기니 슈퍼카입니다.

페루치오가 미우라 품종의 황소에 매료되어 엠블렘으로 선택했던 만큼 이 미우라 차도 그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이 당시 미우라만의 혁신적인 미드쉽 엔진 레이아웃과 스타일링은 세계 최초였고 이는 2인승 미드쉽 엔진 고성능 슈퍼 스포츠카의 기준이 되어 현재까지도 다른 슈퍼카 브랜드 차량 제작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우라

미우라는 람보르기니 슈퍼카의 시대를 연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모델입니다. 

아벤타도르의 마지막 모델인 LP 780 - 4 얼티메가 다음 후속 모델부터 풀 하이브리드화 되기 전 미우라 P400 로드스터에 경의를 표하듯 오마주 모델도 나왔습니다.

미우라 아벤타도르

바로 옆의 아벤타도르는 남성적인 직선미가 강조된 것에 비해 수려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미우라는 지금 나와도 전혀 꿀리지 않게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아름다운 디자인은 페루치오가 아니라, 엔지니어링 팀이 근무하다 남는 시간에 최초로 고안했다고 합니다.

사실 설립자 페루치오는 오직 레이스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라이벌 페라리와는 다르게 강렬한 디자인을 가졌지만 조용한 그랜드 투어링을 선호했기에 이 디자인은 그의 바람과는 조금은 상충된 것입니다. 

 

미우라 P400

1966년 4.0리터 V12 엔진 미드쉽 엔진 레이아웃을 채택하여 현재에도 미드쉽 엔진 슈퍼카의 기준이 되어버린 람보르기니의 상징과도 같은 미우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나머지 모델들의 네이밍 유래에 대해서 더 알아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진 출처 : Lamborghini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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